
손바닥 위의 전장 눈, 블랙호넷의 탄생
영국과 노르웨이 군은 2010년대 초반, 아프가니스탄과 중동에서 치열한 시가전을 치르며 공통된 문제에 직면했다. 좁은 참호와 건물 내부에서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병사들이 직접 몸을 내밀다 희생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이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군은 한 병사가 주머니에서 꺼내 곧바로 띄울 수 있는 개인용 정찰기를 요청했고, 노르웨이의 프록스 다이내믹스(Prox Dynamics)가 이에 응답했다. 그 결과 세계 최초의 초소형 군용 정찰 드론 ‘블랙호넷’이 탄생했다. 무게 33g, 길이 10cm에 불과한 이 작은 기체는 병사의 손바닥에 올려도 공간이 남지만, 전장의 생존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초소형이지만 강력한 성능
블랙호넷은 크기와 무게만 보면 장난감 드론처럼 보이지만, 내장된 기술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가시광 센서와 열화상 카메라를 동시에 장착해 낮에는 컬러 영상, 밤에는 적외선 모드로 선명한 화면을 제공한다. 최대 시속 21km로 2km 반경을 비행할 수 있고, 작전 시간은 25분에 달한다.
GPS가 차단된 건물 내부나 도심 환경에서도 관성항법과 비전 기반 위치 인식으로 안정적인 비행이 가능하다. 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아 적에게 노출되지 않고 정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병사는 휴대용 디스플레이 하나로 드론을 조작하며, 실시간 영상을 받아 전장의 상황을 신속히 파악한다.

전투 현장의 ‘보이지 않는 손’
블랙호넷의 등장은 병사들의 생존율을 크게 높였다. 참호 끝이나 건물 옆 골목의 사각지대를 정찰해 매복이나 위협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었고, 박격포의 목표 좌표를 확인하거나 적 병력과 전차의 동선을 파악하는 데 활용됐다.
건물 진입 작전에서도 복도나 문 뒤를 미리 확인해 불필요한 교전을 피할 수 있었다. 영국군은 2013년 특수부대에 블랙호넷을 처음 시범 배치해 큰 성과를 거두었고, 이후 미군과 나토 회원국들이 본격적으로 도입하며 그 가치가 입증됐다.

계속되는 진화, 블랙호넷 4
초기 시제품은 강풍이나 충격에 취약했으나 개발진은 날개 형상과 비행 알고리즘을 수차례 수정해 내구성과 안정성을 개선했다. 2023년 공개된 ‘블랙호넷 4’는 무게 70g으로 늘었지만, 비행시간은 30분 이상으로 길어졌고, 강풍 속에서도 안정적인 운용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1200만 화소 카메라, 열화상 센서, 장애물 회피 기능까지 추가돼 주야간 어떤 상황에서도 작전 수행 능력을 보장한다. 개발사는 2016년 미국 플리어 시스템즈에 인수되었고, 현재는 텔레다인 플리어가 최신 모델을 계속 선보이며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전장을 넘어선 활용 가능성
블랙호넷은 단순히 군사 작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재난 구조 현장에서 무너진 건물 내부를 탐색하거나, 경찰의 범죄 수색 작전에서 은폐된 용의자를 찾는 데도 사용할 수 있다.
산업 분야에서는 위험 지역의 점검, 원자력 시설 내부 관찰 등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공간을 안전하게 확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작은 크기와 높은 기동성 덕분에 ‘군용 드론의 스마트폰’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다.

한국에 필요한 초소형 드론
한반도의 전장 환경은 중동이나 우크라이나와 달리 산악과 도심이 밀집해 있다. 전투가 벌어진다면 넓은 평야가 아닌 골목과 건물, 산악지대에서의 시가전이 주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좁은 공간과 엄폐물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실시간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초소형 드론의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현재 한국 국방과학연구소와 민간 방산업체들도 마이크로 드론 연구에 착수했으며, 일부는 시제품 단계에서 군부대 시범 운용까지 진행됐다. 실전 배치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블랙호넷 사례는 한국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교훈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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